총 2장이다. 이자수는 경상도 진보현(眞寶縣) 향리 이석(李碩)의 아들이며, 잡과(雜科)인 명서업(明書業)에 급제하여 출사한 인물로,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 침입 때의 전공으로 공신이 되어 송안군(松安君)에 봉하여졌다.
이 고신은 그의 후손인 이황(李滉) 생존 당시까지만 하여도 영주(榮州)의 후손들에게 전래되었으나, 그 뒤 원본은 유실되고 그 내용이 『진보이씨세보(眞寶李氏世譜)』에 기재되어 남아 있다.
2장의 고신은 이자수가 1376년(우왕 2)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와 1382년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에 제수될 때의 것으로, 그 서식(書式)은 고려의 것을 따르고 있다. 비록 원본은 아니나 그 내용을 통하여 고려시대 고신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