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주(仁州)이며, 자는 진정(眞精), 호는 식암(息庵)·청평거사(淸平居士)·희이자(希夷子)이다. 이자연(李子淵)의 손자이며, 이의(李顗)의 맏아들이다.
1083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1089년(선종 6) 대악서승(大樂署丞)이 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춘천의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세웠던 보현원(普賢院)을 문수원(文殊院)이라 고치고 당(堂)과 암자를 지어 이곳에서 나물밥과 베옷으로 생활하며 선(禪)을 즐겼다.
예종이 사람을 시켜 다향(茶香)과 금백(金帛)을 보내어 여러 번 불렀으나 사양하였다. 1117년(예종 12) 9월 예종이 남경(南京)에 행차하였을 때 왕을 만나기는 하였으나 곧 다시 문수원에 들어가 평생을 수도생활로 일관하였다. 1125년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진락(眞樂)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