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원강(元綱), 호는 소당(小塘). 화원(畵員)으로 벼슬은 감목관(監牧官)을 지냈다. 1837년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사한 공으로 등산첨사(登山僉使)가 되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집이 가난하여 그림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그림을 따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재주로 자가(自家)를 이루었다는 기록이 조희룡(趙熙龍)의 『호산외사(壺山外史)』에 전한다. 그러나 유재건(劉在建)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는 문인화풍의 화가인 이유신(李維新)의 조카라고 되어 있다. 그의 작품 중에 김정희(金正喜)의 제발이 들어 있고, 실제 화풍상으로도 이인상(李麟祥), 윤제홍(尹濟弘) 등의 화풍과 유관한 면모를 보이고 있어서 화원이면서도 문인화의 세계를 추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화조(花鳥), 초충(草蟲), 물고기 그림에 뛰어났으나, 특히 초상화를 가장 잘 그렸다고 한다. 그의 영모화(翎毛畵)는 일본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어, 해마다 부산 동래관(東萊館)에서 구해갔다고 한다.
실제로 현존하는 그의 유작들은 산수화나 산수인물화, 인물화 등 다양한 소재로 구분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약산강이오초상(若山姜彛五肖像)」, 「송하처사(松下處士)」, 「미인사서도(美人寫書圖)」, 「파초제시도(芭蕉題詩圖)」와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오수도(午睡圖)」,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총석정(叢石亭)」, 개인소장품인 「귀어도(歸漁圖)」, 「천지석벽도(天池石壁圖)」, 「북한산영루시회사생도(北漢山影樓詩會寫生圖)」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