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숭보(崇甫). 이밀(李密)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지(李智)이다. 아버지는 찰방 이관의(李寬義)이며, 어머니는 강순경(姜舜卿)의 딸이다.
1477년(성종 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사예·사간원사간·성균관사성을 거쳐, 1499년(연산군 5) 사헌부집의·사도시정(司䆃寺正)을 역임하였다. 1500년 초무부사(招撫副使)로 해랑도(海浪島)의 유민을 수색한 공으로 봉상시정(奉常寺正)이 되고, 이듬해 홍문관부제학·동부승지·좌승지·도승지 등에 이르렀다.
1503년 형조참판·경상도관찰사를 거쳐, 이듬해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으로 재직중 갑자사화에 연루, 부안에 유배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1508년 형조판서로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한성부판윤을 거쳐 이듬해 겸동지성균관사(兼同知成均館事)를 지내고, 1512년 경기도관찰사로 나갔다.
1515년 동지성균관사·특진관(特進官)을 역임하고, 1517년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몸가짐이 바르고 곧아 가는 곳마다 청백(淸白)으로 일컬어졌다. 성리학의 어려운 이치를 통달하고, 천지·일월·성신의 천문학(天文學)에도 조예가 깊었다. 시호는 문호(文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