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이종호(李淙滈). 자는 노천(老泉). 생원 이자침(李自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난(李鸞)이다. 아버지는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이수일(李守日)이며, 어머니는 완산이씨(完山李氏)로 이귀년(李貴年)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12년(광해군 4)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9년 금오랑(金吾郎)에 제수되었다. 당시 세력가인 이이첨(李爾瞻)이 이정을 이이첨의 당(黨)으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응하지 않았고, 그 뒤 직장으로 승진하였는데 행신(倖臣)의 서자와 같은 벼슬이라 하여 관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뒤 거창현감으로 발탁되고,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아버지를 도와 반군(叛軍)을 막았다. 그 뒤 여러 고을의 수령을 거쳐 상주목사로 임명되었으나 나이를 핑계로 사양하였고, 이어 장례원판결사로 임용되었다.
1661년(현종 2) 노비의 일이 궁액(宮掖)으로 확대되어 왕과 마찰을 빚자 파직되고, 1668년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를 받고 경림군(慶林君)에 습봉(襲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