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일경(一卿), 호는 귀천(歸川). 이증(李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랑 이경류(李慶流)이다. 아버지는 부사 이제(李穧)이며, 어머니는 임서(林㥠)의 딸이다.
1639년(인조 17) 진사가 되고, 1648년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사간원정언·성균관전적을 거쳐 1656년(효종 7) 홍문관수찬으로서 민회빈 강씨(愍懷嬪姜氏)의 누명을 벗게 하려 상소하다가 죽은 황해도관찰사 김홍욱(金弘郁)을 신원(伸寃: 억울함을 풀어버림)하게 하였다.
그 뒤 승지·예조참의·성균관대사성을 거쳐 현종초에 대사간·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664년(현종 5) 경기도관찰사가 되었으나 모함을 받게 되자 사직하였다.
1666년 한성부좌윤 겸 우부빈객이 되고 1669년 이조참판이 되었다. 1671년 대기근이 있을 때에 한성부좌윤으로 진휼청(賑恤廳)의 제조(提調)가 되어 굶주린 백성의 구제에 힘썼다.
저서로는 『월파만록(月坡漫錄)』·『순외편(順外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