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세종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이의(李義)이며, 어머니는 여산송씨(礪山宋氏)로 부사 송자강(宋自剛)의 딸이다.
유년에 시산부정(詩山副正)에 제수, 일찍부터 학문에 진력하여 성취가 있었다. 중종이 즉위하자 정이(程頤)로 자처하면서, 정이와 주희(朱熹)가 황제에게 올렸던 글을 왕에게 전하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길잡이로 삼을 것을 간청하였다. 이후 조광조(趙光祖)·김식(金湜) 등과 교유하였다.
1515년(중종 10) 순창군수 김정(金淨), 담양부사 박상(朴祥)이 폐비 신씨(愼氏)의 복위를 청한 것으로 인하여 의금부에 하옥되자, 강녕부정(江寧副正) 이기(李祺), 숭선부정(嵩善副正) 이총(李灇), 장성부정(長城副正) 이엄(李儼)과 연명으로써 김정·박상을 석방하고 여악(女樂)을 고칠 것 등을 극간하였다.
이후에도 수시로 시사를 진언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 때 관작을 삭탈당하고, 1521년 안처겸(安處謙)의 옥사에 재차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시호는 문민(文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