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인(仲仁), 호는 후포(後浦). 이숙한(李淑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분(李世芬)이고, 아버지는 이충량(李忠良)이다.
1603년(선조 36) 진사가 되고, 1610년(광해군 2) 참봉으로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사서·사간원정언·사헌부장령·사간을 거쳐 1614년 군기시정(軍器寺正)·필선이 되었다. 1616년에 검상, 1619년 응교·전한을 지내고 이듬해에 대사간을 거쳐 이조참의가 되었다.
충주에 살 때 진사로서 정인홍(鄭仁弘)을 부추기고 유영경(柳永慶)을 모함하는 소를 올린 바 있고, 이후로 대북파에 호응하여 이이첨(李爾瞻)의 심복으로 일하였다.
궁중과 결탁하여 뇌물을 받고 벼슬을 천거하거나, 함부로 문관의 인사정책을 어지럽히다가 인조반정이 일어난 지 한달 만에 정인홍·민심(閔芯)·유세증(兪世曾)·서국정(徐國楨)·한정국(韓正國) 등과 같은날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