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세종의 제4자인 임영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이다. 어머니는 최승녕(崔承寧)의 딸 전주최씨이다. 세종조 친왕손(親王孫)으로 궁중에서 자랐으며, 8세에 중의오산군(中義烏山君)에 봉해지고 여러 차례 승진하여 성종 대 현록오산군(顯祿烏山君)에 이르렀다.
세조대에 친자와 같은 은총을 받았으며 문소전(文昭殿)·사옹원(司甕院)의 도제조(都提調)로서 직무에 신중하여 큰 차질이 없었다는 평을 받았다. 1471년(성종 2)에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조정의 관료들이 죄를 범하였을 경우 수속(收贖)하는 데 비하여 종친이 죄를 범하였을 경우 구사(丘史: 관노비)를 몰수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이를 시정하도록 건의하였다.
한편, 홍윤성(洪允成)이 여러 차례 훈적(勳籍: 공훈기록)에 참가하였고 벼슬이 수상(首相)에 이르러 세력이 혁혁함에 조정에서 감히 건드리는 사람이 없자, 그 기세를 꺾기 위하여 비오는 날 조정에 나가는 홍윤성으로 하여금 비에 관복이 흠뻑 젖어 관복을 갈아입도록 하는 고충을 안겨줌으로써 욕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사(後嗣)가 없어 첩산(妾産) 노충선(盧忠善)의 딸을 첩으로 받아들여 성종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며, 끝내 후사 없이 돌아가자 동생인 정양군(定陽君) 이순(李淳)이 장자인 형을 대신하여 자신이 아버지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여 달라고 성종에게 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