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혜백(惠伯). 첨절제사 이사겸(李思謙)의 아들이며, 병조참판 이방현(李邦鉉)의 아버지이다.
1842(헌종 8)·1846·1857년(철종 8)에 파견된 암행어사들은 연대순에 따라 명천부사·길주목사·경상좌도수군절도사를 지낸 이주철을 죄주어야 한다고 보고하였다. 그리하여 1858년 전라도병마절도사로 있다가 파직당한 것 같다.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이 집정하자 종실에게 군사권이 집중되어 이주철도 우포도대장이 되었다.
이어서 종친부유사당상(宗親府有司堂上)과 경복궁 중건 당시 영건도감제조(營建都監提調)가 되었다. 1866년 총융사·금위대장·공조판서를 지내면서 계속 경복궁 중건 감독을 맡아 가자되기도 하였다. 병인양요 때에는 형조판서로 금위대장을 겸임하면서 대응책을 세웠다.
1871년 신미양요 때에도 한성부판윤과 총융사를 지내며 강화도 방비를 위하여 제도를 개선하기도 하였다. 고종의 친정 뒤에는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하면서 고성(固城)을 이읍(移邑)하였다. 그 뒤 다시 형조·공조의 판서를 지냈다. 시호는 정의(靖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