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3년 충선왕의 왕위 계승을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막아내는 데 공을 세웠다. 1308년(충선왕 즉위년) 왕명으로 왕륜사(王輪寺) 주지 인조(仁照) 등 21명과 더불어 왕이 특별히 부르지 않아도 궁내에 출입할 수 있는 총신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으며, 곧 이어 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간신들의 음모를 막아주고 충절을 바친 공이 있다 하여 포상되었다.
1351년(충정왕 3) 지도첨의상의(知都僉議商議)를 거쳐 1354년(공민왕 3) 첨의평리(僉議評理)가 되었는데, 이해 11월에는 처인군(處仁君)으로서 사신이 되어 원나라에 가서 천추절(千秋節)을 축하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