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백 ()

서암유고
서암유고
한문학
인물
조선후기 『서암유고』를 저술한 문인.
이칭
태소(太素)
서암노인(西巖老人)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22년(광해군 14)
사망 연도
1707년(숙종 33)
주요 관직
순릉참봉|의금부도사|평택현감|첨지중추부사|호조참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서암유고』를 저술한 문인.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태소(太素), 호는 서암노인(西巖老人). 선성군(宣城君) 이무생(李茂生)의 7대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이정방(李定邦)이며, 어머니는 부사 조위(趙撝)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57년(효종 8) 사마시에 합격하고, 7년 뒤인 1664년(현종 5) 순릉참봉(順陵參奉)을 첫 벼슬로 하여 내섬시봉사(內贍寺奉事)를 지냈으며, 1671년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를 거쳐 의금부도사가 되었다.

1672년 평택현감으로 있을 때 흉년대책을 잘 세우고 소송을 공정히 처리하는 등 선정을 베풀어, 세 차례나 다녀간 암행어사의 보고에서 청렴한 관원으로 이름이 났다. 1677년(숙종 3) 임기가 끝나던 해 무고로 인한 탄핵을 받아 고향에 돌아갔다.

1691년 첨지중추부사, 1701년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호조참판 동지의금부사에 증직되었다. 시를 잘하여 남용익(南龍翼)이 권필(權韠)과 짝할 만하다고 칭찬하였다. 저서로 『서암유고(西巖遺稿)』 2권이 전한다.

참고문헌

『서암유고(西巖遺稿)』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