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학 ()

근대사
인물
개항기 임오군란 당시 일본공사관을 습격한 주모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관련 사건
임오군란
목차
정의
개항기 임오군란 당시 일본공사관을 습격한 주모자.
생애 및 활동사항

1882년(고종 19) 7월 17일에 제물포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의 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는 7월 26일 영돈녕부사 김병국(金炳國)을 방문하여 이 조약 제1조에 규정된 군변관련자의 처벌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정부에서는 좌변포도대장 오하영(吳夏泳)과 우변포도대장 이교헌(李敎獻)에게 군변관련자의 체포를 명하였고, 이때 냉동(冷洞)에 거주하고 있던 이진학은 일본공사관습격에 가담하였다는 혐의로 조응순(趙應順)·안흥준(安興俊) 등 8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7월 28일에 이들에 대한 공초장이 하나부사에게 전달되었고, 다음날 하나부사는 김병국과 협의 끝에 이들에 대한 처벌을 결정함으로써 조응순·안흥준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고종시대사』2(국사편찬위원회, 탐구당, 1970)
「임오군변」(권석봉, 『한국사』16, 국사편찬위원회, 1975)
집필자
권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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