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백원(百源), 호는 서호주인(西湖主人)·구로주인(鷗鷺主人)·월창(月牕). 태종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우산군(牛山君) 이종(李踵)이다. 이종은 온령군(溫寧君) 이정(李裎)[원문은 이정(李䄇)]의 양자로 들어가 대를 이었으며, 생부는 온령군의 동복동생인 근녕군(謹寧君) 이농(李襛)[원문은 이농(李禯)]이다. 이총의 첫째 부인은 평양조씨, 둘째 부인은 의령남씨(宜寧南氏)인데, 의령남씨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南孝溫)의 딸이다. 어려서 무풍부정(茂豊副正)에 제수되었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김일손(金馹孫)·강경서(姜景敍) 등과 교유하였으며,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1504년 갑자사화 때 효수형을 받고, 아버지 우산군과 형인 용성부정(龍城副正) 이간(李杆)과 동생 한산정(韓山正) 이정(李挺), 화원부정(花源副正) 이간(李揀), 청양부정(靑陽副正) 이건(李揵), 금천부정(錦川副正) 이변(李抃) 등은 남해의 섬으로 귀양갔다가 2년 뒤인 1506년(연산군 12) 6월에 함께 사사되었다. 이들을 이른바 7공자라고 부른다.
남효온·홍유손(洪裕孫) 등과 함께 청담파의 중심인물로서 시문·음률·서예에 뛰어났으며, 양화진에 집을 짓고 고기잡이로 유유자적하였다. 시조 일부가 전한다.
1506년(중종 1) 무풍도정(茂豊都正)에 추증되었으며, 1705년(숙종 31) 정려를 받았고, 1738년(영조 14) 무풍군(茂豊君)에 가증,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