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삼(友三), 호는 괴은(槐隱). 경기도 지평(砥平) 출신. 1895년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단발령을 내리자 통분하여 안승우(安承禹)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지평감역(砥平監役)으로 있는 맹영재(孟英在)를 포섭하여 거의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자, 맹영재의 부하 김백선(金伯善)을 설득하여 영솔하고 있던 400여 명의 관군으로 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원주를 점령한 뒤 제천으로 진군하여 제천·단양·청풍·충주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함으로써 명성을 떨쳤다. 이후 풍기로 진군하다가 친척인 이민옥(李敏玉)의 배반으로 관군의 기습을 받고 패전하였다.
그뒤 부대를 수습하여 충주로 이동하여 유인석(柳麟錫)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중군장(中軍將)이 되어 재차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춘영부대는 조령을 지키면서 수안보에 있던 일본군병참기지를 습격, 격파하였다.
당시 충주성 내에는 수많은 의병들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일본군이 3개 중대의 병력을 동원하여 충주성을 공격하여왔다. 이 충주성 공방전은 15일간 계속된 전투로서 당시 의병전쟁의 절정을 이룬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용전하다가 수안보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