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백초(百初). 이조판서 이뇌(李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안군(韓安君) 이오(李澳)이고, 아버지는 우찬성 이덕형(李德泂)이며, 어머니는 고령신씨(高靈申氏)로 예조참판 신담(申湛)의 딸이다.
천거에 의하여 승문원부정자·세자시강원설서·사간원정언·홍문관수찬 등을 지낸 뒤 1638년(인조 1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승정원주서가 되었다. 1640년 설서(說書)·예조좌랑·병조정랑을 거쳐 1642년에는 경기도도사가 되었다.
이어 1650년 홍문관수찬이 되고, 그 뒤 1652년(효종 3) 영암군수로 있을 때, 전임 조응립(趙應立) 재직시 있었던 파선사건에 관련, 억울하게 안악에 유배된 일이 있었다. 그뒤 1657년 황해도도사, 1661년 통천군수·성균관직강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