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근(汝近). 현감 이인건(李仁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이욱(李郁)이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후재(李厚載)이며, 어머니는 조수륜(趙守倫)의 딸이다.
1623년 인조반정 때 유생으로 참여하여 공을 세우고 6품관에 오른 뒤, 1630년(인조 8) 사마시에 뽑혀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사헌부감찰·의금부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현감·군수 등의 외직을 지낸 다음,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사예·정언(正言)을 거쳤다. 1652년 장령이 되어 김자점(金自點)의 옥사사건 뒷처리에 공헌하였고, 이듬해 헌납으로 있을 때 정언 황준구(黃儁耉) 등과 함께 대간 신상(申恦)을 탄핵하다가 물의를 일으킴으로써 왕의 노여움을 사서 경성판관으로 좌천되었다.
이 때 김육(金堉) 등이, 80 고령의 아버지를 둔 독자로서 멀리 외직에 좌천된 것을 안타깝게 여겨 환원시킬 것을 누차 왕에게 간청, 1년 만에 다시 내직에 돌아와 헌납(獻納)으로 있다가 얼마 뒤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