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세조, 아버지는 덕원군(德原君) 이서(李曙)이며, 작은아버지인 창원군(昌原君) 이성(李晟)에게 입양되었다. 일찍이 덕진군(德津君)에 책봉된 이래로 왕족으로서의 권세를 믿고 탐욕 방자한 행실이 많아 지탄을 받았다.
1502년(연산군 8) 관비(官婢)를 첩으로 삼아 추쇄(推刷: 자신의 역을 피해 도망한 노비를 본고장으로 돌려보내는 일)에 응하지 않고 사망하였다고 거짓 보고한 일로 의금부에 연금되었고, 1510년 세자빈 친가에 접근하여 권세를 탐하였다.
1506년(중종 1) 반정에 참여하여 중종을 호위한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그러나 1519년 11월 조광조(趙光祖)·이성동(李成童) 등에 의한 위훈삭탈(僞勳削奪)의 일환으로 공신에서 삭제되었다가, 며칠 뒤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다시 회복되었다. 1524년 궁중의 물건을 절취하여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