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합천(陜川). 자는 노옹(魯翁), 호는 월휘당(月暉黨). 증 병조참의 이지로(李智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병조참판 이순생(李順生)이고, 아버지는 참판 이윤검(李允儉)이며, 어머니는 참군 최계한(崔季漢)의 딸이다. 이원(李黿)·정여창(鄭汝昌)의 문인이다.
1502년(연산군 8) 사마시에 합격하고, 1506년(중종 1)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사가독서하였다. 1507년 예문관검열·대교를 역임하면서 사학(史學)의 중요성을 거론, 사학이 있어야만 시비(是非)가 명백하여지고, 시비가 명백하여지면 천하만세의 공론이 밝아질 것이라 주장하였다.
또한 예로부터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각 대에 사씨(史氏)가 있어 시사(時事)를 기록하되 사실에 입각하여 직서(直書)하였음을 강조하면서, 무오·갑자사화 때 사법(史法)을 어지럽힌 자에게는 그 경중에 따라 처벌하고, 사사(史事)로 억울하게 죽은 자들은 모두 봉증하여 실추된 사법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508년 예문관봉교 재임시, 이극돈(李克墩)이 사국(史局)의 일을 누설하여 무오·갑자사화를 일으켰다는 죄를 추론, 사림의 억울함을 풀고 나아가 직필의 기회를 마련하여야 한다고 상소하였다. 그 해 사간원정언·홍문관수찬을 역임하였다. 합천 옥계사(玉溪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