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대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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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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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8년(예종 즉위년)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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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468년(예종 즉위년)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내용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 이후 정치적으로 비중이 커진 남이·강순(康純) 등 신진세력은 훈신(勳臣)과 정치적으로 날카롭게 대립하였다.

그러던 중 훈신계의 유자광(柳子光)은 남이·강순 등이 한명회(韓明澮)·김국광(金國光)·노사신(盧思愼) 등 훈구대신들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여, 마침내 남이·강순 등을 처형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 사실을 폭로하거나 옥사를 다스려 공을 세운 사람을 공신으로 책록하였다.

1등에 유자광·신숙주(申叔舟)·한명회·신운(申雲)·한계순(韓繼純) 등 5명으로 수충보사병기정난익대공신(輸忠保社炳幾定難翊戴功臣)이 내려지고, 2등은 밀성군 침(密城君琛)·덕원군 서(德源君曙)·영순군 보(永順君溥)·구성군 준(龜城君浚)·심회(沈澮)·박원형(朴元亨)·이복(李復)·이극증(李克增)·정현조(鄭顯祖)·박지번(朴之蕃) 등 10명으로 수충보사정난익대공신(輸忠保社定難翊戴功臣)이 내려졌다.

3등은 정인지(鄭麟趾)·정창손(鄭昌孫)·조석문(曺錫文)·한백륜(韓伯倫)·노사신·박중선(朴仲善)·홍응(洪應)·강곤(康袞)·조득림(趙得琳)·신승선(愼承善)·권감(權瑊)·어세겸(魚世謙)·윤계겸(尹繼謙)·정효상(鄭孝常)·권찬(權攢)·조익정(趙益貞)·안중경(安仲敬)·서경생(徐敬生)·김효강(金孝江)·이존명(李存命)·유한(柳漢)·한계희(韓繼禧) 등 22명으로 추충정난익대공신(推忠定難翊戴功臣)이 내려졌다.

처음 공신에 책록된 사람은 37명이었으나, 이듬해 윤흠(尹欽)·강희맹(姜希孟)·이존(李存)이 추록되어 모두 40명이 되었다. 이들에게는 좌익공신(佐翼功臣 : 1455년 세조 즉위년에 공을 세운 사람)의 예에 따라 포상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예종실록(睿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조선세조(朝鮮世祖)∼성종기(成宗期)의 공신연구(功臣硏究)」(정두희, 『진단학보』51,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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