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은 폐단을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무리를 지어 관아에 돌입하여 현감을 핍박하고 민가를 파괴하였다.
여기서 폐단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 길이 없으나 삼정(三政)과 관련된 것 같다. 난의 주동자인 이삼득(李三得)ㆍ김시덕(金始德)ㆍ심시중(沈始中)ㆍ정능이(鄭能伊) 등 4명은 효수되었으며, 그 밖에도 이건정(李健正) 등 3명은 엄형 뒤 유배되었다.
한편 민란에 대한 보고와 조사를 소홀히 한 감사 정태호(鄭泰好)는 문책을 받았으며, 관장(官長)을 제대로 호위하지 못한 좌수ㆍ공형(公兄) 등은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