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의 친필일기인 『지암일기(支庵日記)』 제3권 1698년(숙종 24) 무인 6월 26일조에 ‘일민가 62구’라는 제목 아래에 적혀 있으며, 그 끝에는 시조 1수도 있다. 본문은 국한문체로 되어 있고, 가다가 소주(小注)도 붙였다.
함평현감으로 간 지 6년 만에 서인의 발호로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 감회를 술회한 것이다.
내용은 관계(官界)를 떠나 초야에서 사는 고고한 심성과 자연에 몰입한 경지와 시인으로서의 멋과 연군의 정이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작자자신의 심회뿐만이 아니고 당시 파당에 밀려서 자연에 묻혀 살던 모든 사람들의 정회를 대신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자어가 많이 쓰였지만 조사(措辭)가 매우 능란하고 대우법(對偶法) 등도 잘 구사하였다. 능히 할아버지 선도(善道)의 가통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