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서≫ 발해전은 국도인 상경(上京)을 중심으로 하여 각 방면에 이르는 교통로를 설명하면서, 동남쪽이 바다에 접하는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는 일본으로 가는 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로는 발해와 일본만이 아니라 당나라와 일본을 연결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발해에서 일본으로 가는 교통로는 육로와 해로를 거치게 된다. 우선 육로의 경우, 발해의 도읍지에서 동경용원부가 있었던 현재의 지린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 반라청[半拉城]까지 이르는 경로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런데 전기에는 도읍지가 지린 성 둔화현[敦化縣] 오동성(敖東城)이었으므로 이곳으로부터 허룽[和龍] · 연길(延吉)을 거쳐 훈춘에 이르렀을 것이다. 후기에는 동경성(東京城)이 도읍지였으므로 이곳으로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그 구체적 경로에 대해서, 첫째는 상경의 남쪽으로부터 합이파령(哈爾巴嶺)을 지나 다시 동쪽으로 꺾어 동경에 이른다는 설과, 둘째는 노송령(老松嶺)을 거쳐 남으로 알하하[嘎河]를 따라 내려오는 경로를 지적하는 설, 셋째는 둘째설과 비슷하게 상경에서 왕청(汪淸) · 투먼[圖們]을 거치는 경로를 주장하는 의견 등이 있다.
해로의 경우는 우선 동경에서 동남행하여 장령자산구(長嶺子山口)를 지나 포세트 만(灣)의 크라스키노 성(城)에 자리잡았던 염주(鹽州)에 도착한다. 그 뒤, 단거리 코스로서 직접 동해를 가로질러 일본 혼슈[本州]의 에치젠[越前] · 노토[能登] · 가가[加賀] 등지에 도착하는 방법과, 우회 코스로서 한반도 동남해안을 따라 남행하여 일본의 쓰쿠시[筑紫 : 지금의 北九州]에 도착하는 방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