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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문신 성대중이 1763년 통신사의 서기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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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신 성대중이 1763년 통신사의 서기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
내용

2책. 필사본. 1책의 표제명은‘사상기(槎上記)’, 2책은‘일본록’이다. 1책은 일록(日錄) 1편, 서(書) 2편, 2책은 일본록과 청천해유록초(靑泉海遊錄鈔)가 있다.

1763년(영조 39) 일본 간파쿠(關白)의 세습을 축하하기 위해통 신사의 서기관(書記官)으로 파견된 필자가 이듬해 귀국할 때까지 일본 체류 중에 보고들은 각종 견문을 기록한 책이다. 1책은 1763년 8월 3일부터 이듬해 7월 10일 환가(還家)하기까지 매일의 경과를 기록하였다.

서두에는 참의 서명응(徐命膺)이 처음 상사(上使)로 선발되었다가 다시 조엄(趙曮)으로 교체되는 과정 등 통신사행의 인선에 관해 자세히 기재되어 있다. 원래 필자는 서명응의 제술관(製述官)이었다가 서기관이 되었다.

이 일록을 통하여 통신사행의 국내에서의 행로와 일본에서의 왕복행로 등 여행과정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인 9월 8일에는 필자의 집례(執禮)로 해신제(海神祭)를 거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서일본이재자사 書日本二才子事>는 1765년에 쓴 글이다. 일본에서 만난 대조적인 두 인물을 대비하였다.

가메이(龜井魯)는 견문이 넓고, 시에 재주가 있으며. 조선을 예의지방(禮義之邦)으로 흠모하여 수천 리를 함께 수행하였다. 나하(那波師曾)는 학식이 뛰어나면서도 왜왕(倭王)의 실권이 없음을 항상 분개하며 통신사의 시문을 구하지도 않는 자주적인 인물이라고 하였다.

<서동사축후 書東槎軸後>에서는 일본인들이 필자의 문필을 구하는 것을 적고 있다. 2책의 <일본록>에서는 일본의 지형·지방 제도와 대마도의 위치·역사 및 도주(島主)와 일본의 종교·문학 등에 관한 각종 견문을 정리하였다.

여기에 부록 2편을 더하여 먼저 1764년 4월 7일 도훈도(都訓導) 최천종(崔天宗)이 일본인에게 살해당한 전말과 처리과정을 썼다. 또 안용복(安龍福)이 울릉도에서 일본인을 쫓아내고 일본 오랑도(五浪島)에 가서 도주에게 영토소유권 주장을 하던 활약상을 상세히 적었다.

<청천해유록초>에서는 일본의 봉역(封域)·산수·천문·물산·의복 및 각종 제도, 언어·문학·이학(理學)·불교·풍속 등을 기술하였다. 특히, 외속항(外俗項)에 일본의 네덜란드 등 서양과의 통상관계를 기록하였다.

잡록에는 일본학자 아메모리(雨森東)가 조선에서 일본을 왜적·만추(蠻酋)·추멸(醜蔑) 등으로 부른 데 대해 불평한 것은 임진왜란 후의 문집에서만 나온다며 임진왜란 후의 민족감정을 설명하였다. 이 책은 통신사 견문기 중 학계에서 널리 이용되지 못했으나 조선 후기 한일 관계사 연구에 중요한 문헌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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