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련 ()

임용련
임용련
회화
인물
일제강점기 「에르블레 풍경」, 「금강산 풍경」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이칭
이칭
임파(任波)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1년 3월 18일
출생지
평안남도 진남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에르블레 풍경」, 「금강산 풍경」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개설

일명 임파(任波).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가 중국으로 탈출하였고 난징(南京)의 진링대학(金陵大學)에 다녔다. 1922년 중국인을 가장한 ‘임파’라는 이름의 중국여권으로 미국에 건너가 시카고미술학교와 예일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29년에 예일대학교 미술대학 장학금으로 유럽 미술연구를 떠나 약 1년간 파리에서 제작생활을 하였다. 이 시기 서울에서 파리로 유학을 가 있던 여류 서양화가 백남순(白南舜)과 만나 결혼을 하였고, 함께 파리의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 등에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1930년백남순을 동반하고 서울로 돌아와 부부유화가작품전을 가진 뒤 국내에서의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서화협회전람회와 1934년의 목일회(牧日會) 동인전 및 1937년의 목시회(牧時會) 동인전 등에 부부가 함께 참가하였다.

현재 남한에 전하는 작품은 1930년 귀국 직전에 파리에서 그린 독특한 필치와 세련된 색채구사의 「에르블레 풍경」(국립현대미술관 소장)과 1940년에 그린 「금강산 풍경」 뿐이고 최근 연필화 「십자가의 상」(1929)이 확인되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이는 1931년부터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미술과 영어교사로 재직하다 광복 직후에 북한의 공산화 추세를 피하여 남한으로 탈출할 때 그 동안의 작품들을 모두 두고 왔기 때문이다.

서울에 정착해서는 미군 군정장관 고문을 지냈고, 정부 수립 후에는 서울세관장을 역임하였다. 새로이 화가로서의 활동을 보이려 할 때 6·25전쟁이 일어나 남침 공산군 기관에 연행된 뒤 생사불명이 되었다.

참고문헌

『근대한국회화선집-양화 1-』(금성출판사, 1989)
『근대한국미술자료집 1-임용련·백남순-』(한국근대미술연구소, 1981)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