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골화소국(骨火小國)이었는데, 신라의 조분왕이 정벌하여 현을 설치하였다. 골화는 ‘부족장이 있는 큰 읍〔大邑, 또는 長邑〕’의 뜻이다. 경덕왕 때 임천(臨川)으로 고쳐 임고군(臨皐郡)의 영현으로 하였으며 고려 초에 도동(道同)과 임천의 두 현을 합쳐 영주(永州, 또는 高鬱府)로 하였다.
995년(성종 14) 자사(刺史)를 두었으나, 1018년(현종 9) 경주에 예속되기도 하였다.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었으며, 그 뒤 지주사(知州事)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영천군의 속현으로 하였고, 1981년 영천읍이 시로 승격할 때 이 지역은 동부동이 되었으며, 1995년 영천군과 영천시가 통합되어 영천시가 되었다.
위치상으로는 영천의 동남쪽 2㎞ 지점에 있었으며, 금호강(琴湖江)의 지류인 남천(南川)이 이 지역의 사이를 흐른다. 임천은 경주와 영천을 연결하는 교통상의 요로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영천의 외곽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지에 있었다.
조선 말기까지 금강산성(金剛山城)이 있었으며, 영계방산(永溪方山)과 구토현(仇土峴)의 봉수(烽燧)는 영남지방과 서울을 잇는 주봉에 속하였다. 임천은 도동현ㆍ기계현과 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