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사균(士均). 임효돈(任孝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한(任漢)이고, 아버지는 판서 임유겸(任由謙)이며, 어머니는 이신(李愼)의 딸이다.
1507년(중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이어서 같은 해의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문한관(文翰官: 문필을 맡은 관원)을 거쳐 1513년 지평을 지낸 뒤 다음해에 교리가 되었다.
1516년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천문이습관(天文肄習官)이 되었고, 이어서 장령이 되어 언관의 역할 및 언로의 개방에 대해서 상소하였다. 또, 경연에 참여하여 중국 사신이 올 때마다 요구하는 처녀선발 및 그에 따른 헛소문의 금지를 건의하였다.
이후 전한 · 직제학 · 좌부승지 등을 역임하고, 1526년 대사간이 되어 시정(時政)에 대한 장문의 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530년 좌승지로 경상도감사에 발탁되었고, 다음해에 한성우윤이 되었다.
그 다음해에 권신 김안로(金安老)에게 아부하지 않아 다시 강원감사로 외직에 나갔다. 1533년 그 자신은 동지사(冬至使)로, 아들은 서장관으로 함께 명나라에 파견되는 영광이 있었지만, 귀환 중에 순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