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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 학자 이유태와 송시열 사이에 벌어진 논쟁과 절교에 관한 내용을 수록한 정치서. 유학서 ·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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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 문신 · 학자 이유태와 송시열 사이에 벌어진 논쟁과 절교에 관한 내용을 수록한 정치서. 유학서 · 총서.
내용

규장각에는 필사본 2권 2책과 목활자본 5권 2책이 있고, 연세대학교에는 목활자본 7권 3책이 있다. 모두 서문과 발문이 없으나 조선 말기의 학자인 윤상각(尹相珏)이 편집, 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이 보다 충실한 연세대학교 소장본에는, 권1에 <초려예송(草廬禮訟)>, 권2에 <초려문답(草廬問答)>, 권3에 <명촌잡록(明村雜錄)>·<남몽예만필(南夢囈謾筆)>·<논이회사(論尼懷事)>, 권4에 <황강문답변(黃江問答辨)>, 권5에 <명대의변(明大義辨)>·<논백헌회곡서계삼가장(論白軒晦谷西溪三家狀)>, 권6에 <농은변록(農隱辨錄)>·<소곡속변록(素谷續辨錄)>, 권7에 <가례원류본말(家禮源流本末)> 등이 수록되어 있다.

<초려예송>·<초려문답> 등에는 이유태가 송시열과 동문(同門)으로 지내다가 나중에는 절교에 이르게 된 배경과 전말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1659년(효종 10) 효종의 장례 때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가 거론되자 삼년설(三年說)을 주장하는 남인에 대해 같이 기년설(朞年說)을 주장하여 채택하게 할 만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1674년(현종 15)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별세로 다시 자의대비의 복상문제가 논의되어 남인의 공격을 받고 이듬 해에 함께 영변·장기 등지에 각각 유배되면서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다.

또 절교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이유태가 전의현에 있을 때 송시열에게 보낸 예설(禮說)이 실려 있다. 1676년(숙종 2) 김만중(金萬重)·이홍연(李弘淵)을 포함한 주변인물들과 주고받은 서(書)·별지(別紙) 10편, 그리고 1683년 유배중에 그가 조카인 구(0x9D85)와 나눈 문답도 실려 있다.

<명촌잡록>은 윤선거(尹宣擧)의 문인인 나양좌(羅良佐)의 ≪명촌잡록≫·≪명촌만록 明村漫錄≫ 등을 요약, 수록한 것이다.

끝에 송준길(宋浚吉)이 송시열에게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절의를 지켜 죽지 않은 점을 논변하는 <동춘여회천서 同春與懷川書>을 비롯해 <여현석서 與玄石書>·<여김생창협서 與金甥昌協書>·<문곡여자창업서 文谷與子昌業書> 등이 있다.

<남몽예만필> 은 남극관(南克寬)의 ≪몽예집(夢囈集)≫에서, <논이회사>는 박태한(朴泰漢)의 ≪박정자유고 (朴正字遺稿)≫에서 송시열과 그의 제자 윤증(尹拯)의 노소 분당의 사유에 관한 기록을 발췌, 수록한 것이다.

<황강문답변>은 일찍이 권상하(權尙夏)가 문인들과 당론에 대하여 문답한 것을 제자인 한홍조(韓弘祚)가 ≪황강문답(黃江問答)≫(1책. 필사본. 일명 강상문답(江上問答))이라고도 함.)으로 편집하여 송시열을 옹호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윤광소(尹光紹)가 논변하여 반박하는 내용으로 지은 글을 실은 것이다.

그밖에<명대의변>·<논백헌회곡서계삼가장>·<농은변록> 등은 각각 양득중(梁得中)의 ≪덕촌집(德村集)≫, 남구만(南九萬)의 ≪약천집(藥泉集)≫, 윤증의 아우 추(推)의 ≪농은유고(農隱遺稿)≫ 등에서 발췌, 수록한 것들이다.

규장각 소장본에는 실려 있지 않은 <가례원류본말>은 유계(兪棨)가 엮은 ≪가례원류(家禮源流)≫의 발문을 둘러싸고 소론인 윤증과 노론인 유상기(兪相基) 사이에 오고간 10여 편의 편지와 이와 관련된 주변 인물들의 편지 40여 편 등을 수록한 것이다. 이 책은 이유태를 변호하는 입장에서 편집된 것으로 보이나, 그들이 펼친 사건에 대하여 논평을 삼가는 한편, 주변인물들의 저술을 폭넓게 수록하고 있어서 조선 후기에 사회적인 문제로 심각하게 작용하였던 당쟁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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