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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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정해놓은 시각이 되면 자동적으로 소리를 내어 시각을 알려주는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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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미리 정해놓은 시각이 되면 자동적으로 소리를 내어 시각을 알려주는 시계.
내용

1631년(인조 9) 7월 정두원(鄭斗源)이 명나라에 진주사(陳奏使)로 갔다가 서양사람 육약한(陸若漢)에게서 선물로 받아왔다는 기록이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랜 자명종 전래에 관한 기사이다.

이 시계는 전래 당시에는 시제(時制)가 맞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에 쓰고 있던 시제는 1일이 100각이었지만, 서양법에 따른 이 시계에 적용되는 시제는 96각이었던 것이다.

김육(金堉)의 《잠곡필담 潛谷筆談》에 “서양사람이 만든 자명종을 정두원이 북경에서 가져왔으나 그 운용의 묘를 몰랐고, 그 시각이 상합(相合)됨을 알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과 1636년에 김육이 명나라에 가서 자명종을 보았으나 그 기계의 원리와 운용의 묘를 몰랐다는 것으로 보아 그 사용방법이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잠곡필담》에 의하면 “효종 때에 밀양사람 유여발(劉與發)이 일본상인이 가지고 온 자명종에 대하여 연구한 끝에 그 구조를 터득하였는데 기계가 돌아가면 매시 종을 친다. 자오시에는 9회, 축미시에는 8회, 인신시에는 7회, 묘유시에는 6회, 진술시에는 5회, 사해시에는 4회 치고, 매시의 중간에는 1회씩 친다.”라고 쓰여져 있다. 그러므로 유여발은 우리 나라에서 자명종의 원리를 처음으로 체득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자명종을 제작한 가장 확실한 기록은 1669년(현종 10) 10월에 천문학교수 송이영(宋以頴)이 자명종을 만들었다는 《현종실록》의 기록이다. 1715년(숙종 41) 4월 관상감 관원 허원(許遠)이 청나라에서 가져온 자명종을 본떠서 새로운 자명종을 만들었는데, 이것으로 보아서 이때부터 우리 나라에서도 기계시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韓國科學技術史」(全相運, 正音社,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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