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문신의 인사는 이조에서 무신의 인사는 병조에서 담당하였으나, 소수의 관직은 해당 관서에서 단수로 추천하여 임용토록 하였다.
이 경우에도 망단자(望單子: 일정한 관직에 보직할 세 사람의 후보자를 차례로 기록한 추천서)를 작성하고 왕의 재가를 받는 일은 이조와 병조에서 하였다.
자벽으로 임용하는 관직은 종친부(宗親府)의 정4품 전첨(典籤: 대군이 있을 때만 자벽함) 1원, 정5품 전부(典簿: 대군이나 왕자군이 있을 때만 자벽함), 종6품 주부(主簿) 1원, 종7품 직장(直長) 1원, 종9품 참봉(參奉) 1원이었다. 이들 자리에는 대체로 종성(宗姓: 전주이씨)의 관원이 임용되었다.
종친부는 왕족들이 속한 관부였기 때문에 특별히 독자적인 인사권을 행사하였다. 그리고 충훈부(忠勳府)의 종5품 도사(都事) 1원, 승정원(承政院)의 주서(注書) 2원, 성균관의 정5품 직강(直講) 4원중 1원, 전적(典籍) 13원중 1원, 봉상시(奉常寺)의 종5품 판관 1원, 군기시(軍器寺)의 정3품 첨정(僉正) 1원, 종5품 판관 2원중 1원도 자벽하였다.
또 광흥창(廣興倉)의 종8품 봉사(奉事) 1원은 관할 부서인 호조에서 자벽하였다. 이 외에도 사신으로 가는 사람은 수행 군관(軍官) 중 1인을 자벽할 수 있었다. 이를 자벽군관이라고 하였다.
또 해당 관서의 장관이 독단적으로 추천하는 관직을 자벽과(自辟窠)라 하고, 이조에서 서임하지 않고 해당 관서의 장관이 임의로 추천하여 임명하는 천망단자(薦望單子:그 지위 또는 그 직무에 적당한 후보자의 추천 명단)를 자벽망(自辟望)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