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散文)과는 달리 통제된 리듬을 지니고 있으며 전통적 율격(律格, meter)이 지닌 규칙적인 음절의 강세패턴(반복되는 음보)이 없다.
시행(詩行)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고, 운(韻, rhyme)도 없으며 자유율(自由律), 곧 내재율(內在律)에 근거하여 어구나 이미지의 패턴이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키면서 반복되는 불규칙적인 리듬의 가락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자유시 형태와 유사한 것은 ≪구약성서≫<시편 詩篇>과 <아가서 雅歌書> 흠정역(authorized version)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블레이크(Blake,W.)·아놀드(Arnold,M.)는 자유율을 실험하였다. 휘트먼(Whitman,W.)은 리듬 효과가 반복되는 율격의 음보(音步, foot)에 의존하는 대신 리듬의 단위율과 단어·구·절·행의 반복과 균형·변화에 의존하고, <풀잎 Leaves of Grass>에서 길이가 일정하지 않은 시행의 실험을 하여 자유시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세기 말의 프랑스 상징파 시인들에 의하여 펼쳐진 자유시 운동이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보편화되었다. 자유시가 반복되는 강세와 규칙적인 행법에서 벗어났지만, 그 대신 단어·구·시행들간의 일정하지 않은 간격에 의하여 통제될 때 생기는 구문 단위들간의 중단과 템포, 휴지(pause) 및 박자에 대한 증가된 통제에 이런 종류의 효과가 예시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자유시 형식의 시도는 최남선(崔南善)의 <태백산부 太白山賦>와 <평양행 平壤行>이라는 기행문 속에 있는 시작품, 이광수(李光洙)의 <곰 熊>, 김여제(金輿濟)의 <산녀 山女> 등을 비롯 최승구(崔承九)·현상윤(玄相允)·김안서(金岸曙) 등이 1910년대 중엽에 발표한 일련의 시작품에서 비롯된다.
한편, 자유시에 대한 이론의 도입은 ≪태서문예신보 泰西文藝新報≫(1918) 창간을 전후한 시기에 백대진(白大鎭)·김안서·황석우(黃錫禹) 등에 의하여 소개된 프랑스 상징주의 시 및 시론에서이다.
백대진이 “상징주의는 자유시로다.”라고 한 것을 필두로, 김안서의 <프랑스 시단(詩壇)>에 이르러 자유시에 대한 논의는 본격화된다.
특히, 황석우는 <조선시단의 발족점(發足點)과 자유시>라는 글에서 우리 시단은 자유시로부터 발족하여야 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자유시의 발상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에 있다는 것과 그 자유시의 내재율, 곧 개성률(個性律)을 영률(靈律)로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전제시형(專制詩形)이라 불리는 고시(古詩)의 외적 제율(制律)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시상을 개성률로 표현하는 것이 자유시라는 것이다. 자유시 형식은 김안서·황석우 등의 이론 도입과 자유시 운동을 발판으로 1920년대에 이르러 보편화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