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릉지대에 위치해 있다. 1947년 국립박물관에 의해 8기의 고분이 발굴되었으나 모두가 이미 도굴된 것들이었다. 고분의 구조는 토광묘로 보이는 2기 외에는 모두 석실고분들로서 석실 위에는 뚜껑돌[蓋石]을 씌우고 석실 내부에는 관대(棺臺)가 이루어진 것도 있었다.
이 중 2호분은 석실의 벽면에 회를 바른 후 채색그림을 그린 벽화고분으로서 석실 안에는 돌로 만든 관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석실의 구조는 길이 2.7m, 너비 1.6m되는 남북 장축의 장방형으로서 높이는 1.2m이다. 네 벽은 할석을 3단으로 쌓아올리고, 석실 위에는 3매의 천장석을 덮어 씌웠다.
석실의 벽면에는 동서 양벽에 각 4인, 남북벽에는 각 2인 등 모두 12인의 채색인물상이 그려져 있었으나 대부분 탈락되어 일부만 알아볼 수 있었다. 벽화의 인물들은 대개 보관(寶冠)을 쓰고 손에는 홀(笏)을 쥔 모습으로 도포(道袍)를 걸치고 옥패(玉佩)장식을 착용하였다.
보관의 위에는 모두 십이지(十二支)에 해당되는 동물의 머리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북벽의 동쪽에서부터 자상(子像)으로 시작해 동벽ㆍ남벽ㆍ서벽을 거쳐 북벽의 서쪽에서 해상(亥像)으로 끝났다.
대체로 그림의 윤곽선이 굵고 조잡하지만 활달한 화공(畵工)의 솜씨가 엿보인다. 3매의 천장석 중 북쪽 것의 표면에도 간단한 묵선으로 그린 일월성신도(日月星辰圖)가 나타나 있다.
이미 도굴된 고분이지만 석실 바닥의 수습조사에서 칠을 한 관재(棺材)와 관못[銖釘]을 비롯한 거울[五稜白銅鏡] 3점, 청자대접, 철판, 놋수저[鍮匙]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개원통보(開元通寶) 등 동전이 다량으로 나와 이 고분의 축조연대를 추정할 수 있었다.
석실 벽면에 나타난 십이지상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에 직결되는 고려고분으로 추정된다. 또한 출토된 대송원보(大宋元寶) 등은 이 고분이 고려 중기 이후에 축조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