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394년(태조 3)북일면 오산리 교촌에 있던 향교를 복원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0년(선조 33)동현 장안리 장자동으로 신축, 이전하였다.
이 때 진원현(珍原縣)이 장성현과 합현됨에 따라, 진원리에 있던 진원향교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피폐되어 자립할 수 없게 되자 진원향교를 폐지하고 장성향교에 합치게 되었다.
1658년(효종 9)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1796년(정조 20) 도유사(都有司) 박상초(朴尙初) 등이 중수하고, 1850년에 보수하였다. 1957년 전교(典校) 조종화(趙鍾華) 등이 정부의 보조로 대성전 등을 중수하였고, 1962년과 1970년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3칸의 대성전, 각 3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5칸의 명륜당, 4칸의 동재(東齋), 3칸의 서재(西齋), 3칸의 수직사와 행랑, 내신문(內神門) · 외삼문(外三門) · 사마재(司馬齋) · 양사재(養士齋)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 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敎官)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5년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소장 전적은 판본 21종 30책, 사본 21종 28책의 총 42종 58책이 있으며, 이 중 필사본인 《향적 鄕籍》 · 《교안 校案》 · 《장성부청금안 長城府靑衿案》 · 《향교전답양안 鄕校田沓量案》 · 《서재유안 西齋儒案》 · 《교원교폐절목 校院矯弊節目》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와 조선 후기 향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