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53.7㎝, 가로 42.1㎝. 현존하는 예가 극히 드문 고려 말기의 초상화로 안향상(安珦像)이나 이제현상(李齊賢像)에서와 같은 우안(右顔) 묘사와 평정건(平頂巾)의 착용이 주목된다. 그리고 단령(團領) 깃 안의 당초문(唐草文: 덩굴무늬)은 처음 보는 것으로 매우 특이하다. 필치가 섬세하고 작품의 품격이 뛰어나 고려시대 초상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는 희귀한 작품이다.
염제신(廉悌臣, 1304-1382)은 고려 말기 문신이다. 본관은 파주(坡州)로 파주(곡성) 염씨의 중시조이고 자는 개숙(愷叔), 시호는 충경공(忠敬公)이다. 어린 시절 원나라에서 살았을 때 황제의 총애를 받고 고려에 돌아와 충숙왕부터 공민왕, 우왕까지 여섯 왕을 섬겼다. 뛰어난 학식과 청렴한 성품의 소유자로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문하시중(門下侍中)까지 지냈다. ‘충성수의동덕논도보리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 곡성부원군[忠誠守義同德論道輔理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曲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소장자에 의하면 원래 염제신의 원찰(願刹)에서 모시고 있다가 그의 9세손이 전라남도 나주의 금강서원에 옮겨 봉안하였으나 그 뒤 보관 상태가 좋지 못하여 종가에서 소장해 왔다고 한다.
그림을 그린 작자는 미상이나 염제신이 공민왕의 빙부(장인, 염제신의 딸이 신비(愼妃)임)였기 때문에 『목은문고(牧隱文藁)』권15에 “(공민왕이) 친히 얼굴을 그려 하사하였다(親圖形賜之)”, “ 공민왕께서 친히 그 모습을 그리니 풍부한 공훈이며, 성대한 덕행이 단청에 밝게 빛난다(玄陵親圖其形豊功盛 德煥乎丹靑)”는 기사로 미루어 공민왕이 그린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작품은 원래 족자였으나 현재 액자로 표구되어 있다. 화면의 네 변이 원래의 것인지 잘린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림 주요 부분이 화면 중앙에 자리하고 있어 큰 손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안면의 윤곽선은 옅은 회색으로 정의하였고, 법령(法領)의 주름 아래를 비롯한 여러 곳에 옅은 선염을 베풀었다. 눈썹, 모발, 수염은 모두 흑과 백의 가는 선을 교차시켜 묘사하였다. 눈시울에는 붉은 선염을 가하였다. 눈동자는 ○와 같이 표현한 뒤에 위 눈꺼풀에만 한 줄의 가는 먹 선을 그었다. 눈꺼풀 상하에 속눈썹을 일일이 그렸다.
옷주름은 꺾임이 적은 철선묘(鐵線描)로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녹포(綠袍)에는 아무런 문양이 없다. 녹포에 많이 떨어져 나간 곳을 뒤에 보수하였다. 그리고 단령의 안쪽은 연보라색 바탕에 보라색 선묘로 당초문을 자유롭게 그려 넣었다.
온화한 기품이 느껴지는 상호와 단순한 평정건과 어깨선의 윤곽이 작품에 깊이를 준다. 상태는 안료가 칠해지지 않은 바탕면의 손상이 가장 커서 크고 작은 박락이 많다. 그러나 얼굴의 상태는 매우 좋다. 평정건의 상부에 작은 보수 흔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