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 과정에서 전민족의 역량을 항일전선에 통일적으로 결집시키기 위한 운동은 1920년대 이후 여러 형태로 전개되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합전선 내지 유일당 운동은 꾸준히 전개되었다. 특히 만주사변을 겪고 난 뒤 1932년 11월 상해에서는 김원봉(金元鳳)의 의열단을 중심으로 조선독립당·조선혁명당·한국혁명당·한국광복동지회 등 5개 독립운동단체가 연합해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韓國對日戰線統一同盟)을 결성하였다.
이 동맹은 당초 가맹단체의 협의기관이었기 때문에 다시 한국독립단체를 총결집해 참다운 항일전선의 통일과 확대 강화를 목적으로 한 새로운 독립운동 정당이 필요하였다. 이에 1935년 각 단체는 스스로의 조직을 해체하고 그 밖의 애국인사를 영입해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이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민족혁명당도 각 독립운동단체의 연합체에 지나지 않아 처음부터 김구(金九)의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과 대립하였다. 또한 조소앙(趙素昻)·지청천(池靑天)계가 좌경적 경향에 반발해 이탈함으로써 연합전선 형성은 실패하였다.
그러나 중일전쟁으로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한중협동전선 구축과 함께 한국독립운동전선의 통일도 요청되었다. 김구의 한국국민당은 독립운동단체의 대동단결을 꾸준히 추진해 1937년에는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韓國光復運動團體聯合會)를 결성하고 그 밑에 항일혁명 역량을 결집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민족주의 우파 중심의 연합세력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김원봉의 민족혁명당 역시 민족통일전선운동을 추진해 1937년 12월에는 좌파의 조선민족해방운동자동맹(朝鮮民族解放運動者同盟)·조선혁명자연맹(朝鮮革命者聯盟)·조선청년전위동맹(朝鮮靑年前衛同盟)을 결집해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을 조직하였다.
결국, 민족통일전선운동은 김구와 김원봉을 중심으로 하는 양대 진영의 대립만 날카롭게 하여 항일독립운동전선의 대동단결은 난관에 부닥치게 되었다.
그러나 중일전쟁이 절정에 이르면서 고조된 항일독립운동전선의 통일 요구와 중국 국민정부의 권유로, 1939년 5월 김구와 김원봉은 「동지동포제군에게 보내는 공개통신」의 연맹선언에서 양진영의 연합전선 형성을 구체화하게 되었고, 9월에 이르러 전국연합진선협회가 발족되었다.
김구와 김원봉 양진영은 연합전선을 형성할 당시 공동의 정치강령 10개조를 채택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일본제국주의의 통치를 전복하고 조선민족의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한다. ② 봉건세력과 일체의 반혁명세력을 숙정하고 민주공화제를 건설한다. ③ 국내에 있는 일본제국주의자의 공사재산과 매국적 친일파의 일체 재산은 몰수한다.
④ 공업·운수·은행 및 기타 산업부문에 있어 국가적 위기가 있을 경우에는 각 기업을 국유로 한다. ⑤ 토지는 농민에게 분배하고 토지의 일체 매매를 금지한다. ⑥ 노동시간을 감소하고 노동에 관한 각 종업원은 보험사업을 실시한다. ⑦ 부녀의 정치·경제·사회상의 권리 및 지위를 남녀 같이 한다.
⑧ 국민은 언론·출판·집회·결사·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⑨ 국민의 의무교육과 직업교육은 국가의 경비로써 실시한다. ⑩ 자유·평등·상호부조의 원칙에 기초해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촉진한다.
위의 강령에 나타난 것을 보면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에 의한 자유·평등을 강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협회에 참가한 7개 독립운동 정당은 단일정당 결성을 위한 통일회의를 여러 차례에 걸쳐 협의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7개 단체 중 공산주의 단체인 조선민족해방자동맹과 조선청년전위동맹의 두 단체가 이탈하고 5개 단체로서 단일조직이 이루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1940년 9월에는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광복군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사조직으로 결성되고 광복군도 의용대의 해체를 제의하였다.
1941년 11월에는 민족혁명당도 제6회 전당대표회의에서 임시정부에의 참가를 결의하였다. 1942년 10월에 열린 제34회 임시의정원회의에서는 6명의 민족혁명당원이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앞서 이 협회에서 이탈했던 단체인 조선민족해방자동맹과 조선청년전위동맹 등도 가입하여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각 정당·단체 및 무소속의 인사들을 총망라한 전민족적인 의정이 성립되었다.
1942년에는 조선의용대도 광복군에 합병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협회는 해체되었으나 그 연장선상에서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좌우 합작의 민족연합전선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