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등 ()

목차
고대사
제도
신라시대의 관직.
목차
정의
신라시대의 관직.
내용

정원은 2인이며, 565년(진흥왕 26)에 집사부(執事部)의 전신인 품주(稟主)의 장관직으로 설치되어 651년(진덕여왕 5)에 품주가 집사부로 확대 개편될 때, 중시(中侍) 아래 차관직으로 떨어졌다.

그 뒤 747년(경덕왕 6)에 시랑(侍郎)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다만 이보다 30여 년 앞선 금석문자료인 김지성(金志誠)이 만든 감산사미륵보살(甘山寺彌勒菩薩) 및 아미타여래조상기(阿彌陀如來造像記)에 시랑의 명칭이 보이고 있어 651년 중시가 설치될 때 개명된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취임할 수 있는 관등은 아찬(阿飡)에서 나마(奈麻)까지로 되어 있어 6두품이 차지할 수 있는 최고관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시랑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품주고(稟主考)」(이기백, 『이상백박사회갑기념논총』, 1964 ;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신라 집사부(執事部)의 성립」(이기백, 『진단학보』 25·26·27합병호, 1964 ;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집필자
이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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