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로 봉급을 주기 위해서 두었던 체아직(遞兒職) 녹관(祿官)이었으므로, 장악원으로부터 1년에 네 차례 추천서를 이조에 보고하여 사령서를 받았다.
1409년 (태종 9) 전악이라는 체아직 녹관이 처음으로 생겼는데, 그 당시 종5품의 사성랑(司成郎) 전악 1인씩을 전악서(典樂署)와 아악서(雅樂署)에 두었다. 성종 때에는 정6품의 전악 1인을 장악원에 두었고, 1505년(연산군 11)에는 이를 협궁(協宮)이라 고쳐부르고 정5품의 품계로 한 등급 올렸다.
영조 때에는 전악 1인을 추가하였는데, 전악은 체아직 녹관 중에서 우두머리로서 전율(典律, 정7품)·부전율(副典律, 종7품)·전음(典音, 정8품)·부전음(副典音, 종8품)·전성(典聲, 정9품)·부전성(副典聲, 종9품)을 거느리고 교육과 연습에 관한 책임을 맡았다.
영조 이후 장악원 소속의 전악이 증원된 듯하며, 맡은 바 직책에 따라서 여러 명칭의 전악이 있었는데, 감조(監造)·집사(執事)·집박(執拍)·풍물차지(風物次知)·선창(先唱)·대오(隊伍)·권착(權着) 등이 그 실례들이다. 그 뒤 1865년(고종 2)의 전악은 정6품이었고 인원은 2명이었으나, 관제가 개혁된 이후 아악수장(雅樂手長)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