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9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레이놀즈(Reynolds, W. D.)가 학원선교를 위하여 전주에 있는 사택에서 신학문당(新學問堂)을 설립하였다.
이곳에서 학생 한 명을 대상으로 한글과 셈본 등을 가르치다가 1904년해리슨(Harrison, W. B.)의 사택으로 이전하면서 교사 5명, 학생 10여 명으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1906년에는 선교사 니스베트(Nisbet, J. S.)가 희현당서원(希顯堂書院) 자리에 ‘하느님을 알고 믿으며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사회와 국가에 바람직한 기독인을 교육함’을 목적으로 학교 건물을 짓고 교명을 예수교학교라 하였다. 얼마 뒤 다시 신흥학교로 개칭하여 니스베트가 설립자 겸 초대 교장에 취임하였다.
초기에는 5년제의 보통과로 출발하였으며, 1909년 사립신흥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같은 해 제1회 졸업생 5명을 배출하고 고등과를 모집, 보통과와 고등과의 학생수가 150명으로 증가하였으며, 1912년에 4년제 고등과 학생 12명이 최초로 졸업하였다.
교과목은 수신 · 성경 · 국문 · 한문 · 영어 · 역사 · 지리 · 습자 · 체조 · 산술 · 창가 · 도화 · 박물 등을 주로 가르쳤다. 1926년 교명을 전주신흥학교로 변경하고 이듬해에 일시 공업과를 신설하였다가 폐지하였으며, 1933년 5년제로 수업연한이 연장되었다.
1937년 일제의 신사참배 종용에 선교회에서는 이를 거부하기로 결정하고 같은 해 10월 보통과는 전주의 공립학교로, 고등과는 고창군에 있는 고창중학교로 편입시키면서 학교를 폐교하였다. 이때까지의 졸업생은 보통과 883명, 고등과 244명이었다.
1946년 복교준비를 진행, 같은 해 11월에 3년제 신흥초급중학교로 인가를 받아 240명의 학생을 선발하고 장로 장평화(張平化)가 교장에 취임하였다. 1950년 1년제 전수과를 설치하였고, 같은 해 4월 「교육법」 개정에 의하여 신흥중학교와 분리되어 신흥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2009년 9월 개교 110주년을 맞이하였다.
교명인 ‘신흥’은 예수를 교육의 표준으로 삼고 신문명을 바르게 받아들여 민족교육과 과학교육을 실시, ‘사랑 · 화평 · 자유’의 새 세계를 이루자는 이념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예수의 정신을 배우며 애족 · 봉사 · 생산하는 인물이 되게 함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지(智) · 인(仁) · 용(勇)’으로 되어있다. 활동사항은 1919년 3·1운동 때 전교생이 전주만세시위에 참여하였으며, 1929년의 항일학생운동, 1932년의 비밀결사운동 및 독서회사건 등에서 순국학생을 내면서까지 항일독립투쟁을 적극 전개하여 이 지방 학생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개교 이래 매년 추수감사제를 열어 하나님 이웃에 감사하는 마음을 이어오고 있으며 찬송가경연과 체육행사도 전통적인 행사가 되고 있다. 과외활동으로는 보육원 아동들에 대한 봉사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 종교부의 활동이 두드러지며, 음악부 · 미술부 · 문예부 · 과학부 등의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체육부는 개교 이후 농구 · 하키 · 유도 · 육상 · 양궁 · 탁구 등의 활약이 있었으며, 현재는 씨름부에서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
2010년 3월 현재 30학급에 재학생 1,136명, 교원 74명이다. 2010년 2월 현재 59회 졸업으로 총 2만 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