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5년(태종무열왕 2)에 태종무열왕이 백제와 고구려가 함께 변경을 침해함을 분히 여겨 정벌할 것을 모의하고 군사를 출동시킬 때에 대사(大舍)로서 낭당대감(郎幢大監) 김흠운(金歆運)과 함께 출전하였다.
신라군이 백제땅에 이르러 양산(陽山 :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아래에 진영을 치고 조천성(助川城 :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飛鳳山城)을 공격할 때, 오히려 백제의 습격을 받아 전세가 크게 불리하였다.
이에 김흠운이 말을 타고 창을 잡고서 죽을 각오로 싸울 준비를 하자 전지는 “지금 적이 어두운 속에서 움직여 지척을 분별할 수 없으니 공이 비록 죽는다 해도 아무도 알 사람이 없다. 더구나 공은 신라의 귀골(貴骨)이요 왕의 사위이니 만일 적의 손에 죽는다면 백제의 자랑거리요 우리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하며 말렸다. 그러나 김흠운은 물러나지 않고 싸우다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