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아버지는 감찰사감찰대부(監察司監察大夫) 정양생(鄭良生)이다.
1383년(우왕 9) 교주도안렴사(交州道按廉使) 재직 중에 왜구에게 인장(印章)을 탈취당하고 파직되었다가 곧 복직되었다.
1399년(정종 1) 형조전서(刑曹典書), 1401년(태종 1) 경기도관찰사, 다음해부터 1403년까지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404년 다시 형조전서에 제수되었으며, 형정(刑政)을 천단한 일로 우봉(牛峯)에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1408년 공안부윤(恭安府尹)으로 태상왕(太上王:태조)의 죽음을 알리고 시호를 청하는 고부청시사(告訃請諡使) 정탁(鄭擢)과 함께 부사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귀국과 함께 한성부윤에 개수(改授)되었다가 곧 사행시에 다량의 금물(禁物)을 휴대하고 간 일로 파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