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영의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군방(君芳), 호는 지우재(之又齋)이다. 조선 초기의 문신 정인지(鄭麟趾)의 후손으로 실학자이며 지리학자인 정상기(鄭尙驥)의 증손자이다. 선비화가로서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지리학의 명문이었던 집안의 전통을 따라 기행(紀行)과 탐승(探勝)으로 시·서·화에 몰두하며 일생을 보냈다.
정수영은 산수를 비롯해 화조(花鳥), 어해(魚蟹)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으나 주로 산수화에 심취했던 듯하다. 산수화는 전통적인 정형산수화(定型山水畵)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두루 제작하였다. 금강산과 한강 일대를 기행사경(紀行寫景)하고 그린 진경산수화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회화세계는 자유분방한 필치와 유탄(柳炭 : 버드나무 숯) 사용, 거친 독필(禿筆 : 끝이 거의 닳은 붓)로 강한 개성을 드러냈다.
이러한 그의 화풍은 조선 후기에 확산된 남종화풍(南宗畵風)을 익혀 자기화시킨 것이다. 아울러 정선(鄭敾)의 진경산수화풍을 비롯해 심사정(沈師正), 이인상(李麟祥), 강세황(姜世晃) 등 선배 문인화가들의 화법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스케치풍의 유탄약사(柳炭略寫)와 수묵(水墨) 사용, 거친 붓자국, 대담한 화면 구성 등은 조선 후기 화단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참신함을 지녔고 한국적인 독특한 분위기와 정취를 풍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796∼1797년에 그린 「한강·임강유람사경도권(漢江臨江遊覽寫景圖卷)」(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있다. 또 1797년(정조 21) 금강산 일대를 여행하면서 만든 초본을 바탕으로 그린 1799년 작 「해산첩(海山帖)」(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여러 금강산도(金剛山圖)들이 전한다. 이 밖에도 「지우재묘묵첩(之又齋妙墨帖)」(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춘강고주도(春江孤舟圖)」(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추경산수도(秋景山水圖)」(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등과 같이 독특한 필세(筆勢)를 지닌 남종화풍 산수화를 다수 남겼다. 또 화조, 어해, 영모(翎毛) 등을 담은 그림들도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