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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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집 / 조광조
정암집 / 조광조
유교
문헌
조선 전기의 문신 · 학자, 조광조의 계사 · 경연진계 · 서(書) · 연중기사 등을 수록한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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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 학자, 조광조의 계사 · 경연진계 · 서(書) · 연중기사 등을 수록한 문집.
내용

본집 5권, 부록, 속집 4권 합 10권 5책. 목판본. 이 책은 당초 이기주(李箕疇) 등이 유문(遺文)과 사적(事蹟)을 수집해 그의 5대손 위수(渭叟)에게 준 것을 선조의 어명으로 김굉필(金宏弼)·이언적(李彦迪)·정여창(鄭汝昌) 등의 문집과 함께 ≪유선록 儒先錄≫이라는 이름으로 찬록(贊錄)되었다.

그 뒤 1683년(숙종 9) 박세채(朴世采) 등에 의해 원집(原集) 4편에 부록을 추가, 5편으로 편찬되고 송시열(宋時烈)에 의해 간행되었다. 이 때 간행한 판본은 영본(嶺本)과 호본(湖本)이 전해 오고 있었는데, 영본은 대구에, 호본은 능주(綾州)에 있는 죽수서원(竹樹書院)에 각각 보관되어 있다.

그 뒤 죽수서원본을 저본(底本)으로 양회연(梁會淵)이 민정식(閔正植)의 후원을 받아 1892년(고종 29)에 간행된 것이 이 책이다. 이것이 삼지재본(三芝齋本)으로, 먼저 간행된 판본에 빠져 있는 연보가 추가 수록되었다.

1683년 송시열의 서문, 1892년 송병선(宋秉璿)의 중간 서문이 있고, 1681년 박세채의 발문, 1891년 정범조(鄭範朝)의 중간 발문이 있다. 권두에 <숙종대왕어제독정암집유감 肅宗大王御製讀靜庵集有感>이라는 짧은 어제 간행 후문(御製刊行後文)이 있고, 어제시에 대한 후지(後識)·서문·중간 서문, 원집과 부록의 목록이 있다.

권1은 부(賦) 1편, 시 5수, 권2는 대책(對策) 1편, 소(疏) 1편, 계사(啓辭) 13편, 서(書) 1편, 잠 1편, 묘갈 1편, 공장(供狀) 3편, 권3은 경연진계(經筵陳啓) 44편, 권4는 경연진계 36편, 습유(拾遺)로 계(啓) 5편, 권5는 연중기사(筵中記事) 4편, 습유에 기사(記事)와 유묵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록 권1은 사실(事實), 권2는 어류(語類), 권3은 계·소·차, 권4는 전지(傳旨)·제문·축문·기문(記文)·발문, 권5는 세계와 연보, 권6은 행장·묘지명·신도비명·발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대책의 <알성시책 謁聖試策>은 그가 과장에서 왕의 물음에 대답한 것으로, 치국의 경륜이 조목조목 나열되어 있어 그의 학문과 정치적 안목을 말해 주는 글이다.

소의 <홍문관청파소격서소 弘文館請罷昭格署疏>는 성리학의 입장에서 도교를 허탄(虛誕)한 것이라 비판하고, 불교는 차원이 높으나 민생 일상 생활에 실상이 없다는 점을 들어 각각 이단으로 몰아 배척한 내용이다. 당시 유학자들의 견해와 사상을 짐작하게 하는 글이다.

또한, 계사의 <사간원청파양사계 司諫院請罷兩司啓>와 <양사청개정정국공신계 兩司請改政靖國功臣啓>는 모두 왕정이 어떠한 정규(定規)가 없어 착오가 생긴 것을 시정하라는 내용이다.

전자는 박상(朴祥)·김정(金淨) 등 신진 사류들이 신비(愼妃)를 폐출해서는 안 된다는 상소를 한 대간에 대해 제재를 가한 것을 잘못된 것이라 주장하고, 앞으로는 대간의 언로를 넓혀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후자는 중종의 반정 공신 가운데 성희안(成希顔)과 박원종(朴元宗) 등이 무식해 유자광(柳子光)을 공신록에 넣는 등 공신의 녹정(錄定)이 잘못되었음을 공박한 글이다. 이로 말미암아 1519년(중종 14)에 기묘사화가 일어났고 이 사화로 그 자신은 정치적으로 제거되었다.

조광조는 16세기 사림파의 대표자로 훈구 관료에 대해 반대 입장에서 도학 정치와 개혁 정책을 추진하다가 시의(時宜)에 맞지 않아 좌절된 사람으로,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 사화가 일어나게 된 배경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의 학통은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김굉필의 도학 연원(道學淵源)을 이어서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에게 연결시켜 주고 있으며, 유학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규장각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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