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덕수(德秀). 정구진(鄭龜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지하(鄭之夏)이고, 아버지는 군수 정찬우(鄭纘禹)이며, 어머니는 정자순(鄭子順)의 딸이다.
1498년(연산군 4) 종부시주부로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지평에 승진, 홍문관전한이 되었다. 1500년 장령을 거쳐 1502년 집의가 되고 다음해 당상관에 승진되면서 제주목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칭탁하고 사직하였다.
이 때문에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 장류(杖流)하도록 논죄되었으나, 대신들의 “더운 날씨에 결장(決杖)함은 생명에 위험하니 감형하라."는 구호로 감장부처(減杖付處)되었다.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면서 전일에 홍문관·사헌부에 재직하면서 왕의 실정을 비판한 것을 비롯하여 제주목사의 부임을 기피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연산군의 혐오로 이에 연루되어 참수되었다. 1506년(중종 1) 중종의 즉위와 함께 신원되면서 관작이 복구되었고, 아들도 녹용(錄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