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려의 송산현(松山縣)이었는데, 1033년(덕종 2)에 토성을 쌓고 정주진(靜州鎭)이라 하였다. 이곳에 주민 1,000호(戶)를 옮겨 살게 하였으며, 정주방어사를 두었다. 문종 때 정주를 포함한 5개성이 성은 크고 백성이 작다 하여 내륙의 주민을 각각 100호(戶)씩 옮겨 살게 하였다.
1402년(태종 2)에 주를 폐지하고 의주목에 귀속시켰으며, 세종 때 이곳의 토성을 석성으로 쌓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의주 남쪽의 압록강유역에 있었으며, 위화도(威化島)와 마주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의주와 인주(麟州) 사이에 있어 두 지역을 연결하는 봉수가 있었고, 강변에 옛 진보인 암림곶(暗林串)이 있었으나 군사적으로는 조선 초기에 비하여 그 비중이 점차 낮아진 것 같다.
따라서, 정주는 의주 남쪽의 국경 방어지역으로 인주ㆍ영주(靈州)와 함께 백마산성(白馬山城)의 외곽 군사기지의 구실을 하였다. 지금의 고성면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