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록관(無祿官)으로 조선 초기에는 내의원·상림원(上林園)·충호위(忠虎衛)·복흥고(福興庫)·주자소(鑄字所)·사옹원 등에 다수 설치되어 있었으나 1448년(세종 30) 이후에 대부분 폐지되고 사옹원에만 두게 되었다.
또, 초기에는 무록관의 체제가 정비되지 않아 정5품 이하의 무록관도 제거로 부르기도 하였으나, 1443년 3품직만을 제거로 하고 그 이하 6품까지는 별좌(別坐)로 호칭하였다.『경국대전』이 편찬되는 과정에 제거·제검(提檢, 정·종 4품)·별좌(정·종 5품)·별제(別提, 정·종 6품)·별검(別檢, 정·종 8품)의 무록관 체제가 정비되었다.
제거를 비롯한 무록관은 녹봉이 지급되지 않고 관료의 신분만 가진 관원으로, 초기에는 과전(科田)이 지급되었으나 직전법(職田法)이 폐지된 이후에는 이것마저 없어지게 되었다.
사옹원의 경우 제거는 4품인 제검과 합쳐 4인을 두게 하였는데, 책임자인 정(正) 1인을 제외하면 이들이 실상 왕의 식사와 궁중의 음식물을 총괄하는 실질적 담당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