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은 농업용수를 저수하기 위한 제방과 방죽을 뜻한다. 벼농사가 건답(乾畓)에 볍씨를 맞바로 파종하던 시대에서 차차 모를 길러 이앙재배(移秧栽培)하는 시대로 바뀜에 따라 물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지게 되었다.
따라서, 태조 이래 권농관(勸農官)으로 하여금 방죽과 관개시설의 설치를 권장해오다가 1662년(현종 3) 조복양(趙復陽)의 건의에 따라 진휼청(賑恤廳)에 이를 전담하는 제언사(堤堰司)를 설치하고 <제언사목 堤堰事目>을 제정한 것이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제정한 최초의 제언 규정이다. 그 뒤 1778년에 비변사에서 제정한 이 <제언절목>은 전문(前文)과 11조항의 절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전문에는 제언수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제언보호를 위한 수령이나 관찰사들의 직무소홀을 경계하면서, 다음과 같은 <제언절목>을 제정, 시달하니 만전을 기하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제1조는 기존의 제언의 길이와 너비는 비변사나 각 고을의 대장에 등재되어 있으므로, 제방이나 저수지 바닥을 논밭으로 불법경작한 곳은 즉시 원래상태로 복구시키되 지방관이 이를 소홀히 할 때에는 문책하겠다는 것이다.
제2조는 흙으로 메워진 저수지 바닥의 흙을 파내되 바로 바닥 근처에 두지 말고 멀리 운반하여 다시 유입되지 않도록 하고, 저수지 안에 작은 섬과 같이 쌓아두었던 흙도 말끔히 치워 저수를 많이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제3조는 제방에는 수문(水門)이 없어 불편하므로 이번 수축시에는 반드시 소나무로 만든 수통(水桶)을 설치하여 필요에 따라 열고 닫도록 하라는 것이다. 특히, 전주의 앵금제(鷪金堤)나 수암신언(秀巖新堰)에 수통을 신설하여 그 효과가 컸다는 것을 예시하고 있다. 제4조는 봄갈이가 끝나면 제언수축을 시작하되 깊이 파고 높이 쌓아올릴 것이며, 물이 없으면 개천물을 끌어들이고 개천에 물이 없으면 보(洑)를 막아 물을 끌어들이도록 하라는 것이다.
제5조는 작은 제언은 방죽 아래 농사짓는 농민이나 부근의 군정(軍丁)을 동원하고 좀 큰 것은 1, 2개 면민의 힘을 빌릴 것이며, 가장 큰 저수지는 1개군이나 인근군의 인력을 동원하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제6조는 노력동원시 군정이나 교(校)·원(院)·역(驛)의 종사자도 수시 동원하여 노는 자가 없도록 하고, 시한적으로 승군(僧軍)까지도 동원하라는 것이다. 제7조는 논공(論功)을 위한 자료작성 보고요령이다.
제8조는 각 도는 수축 전후의 제언의 길이와 너비 및 제방의 높이 등을 기록하여 책으로 엮어 보고하라는 것이다. 제9조는 보 수축을 통하여 관개면적을 넓힌 것도 아울러 보고하라는 것이다. 제10조는 이 절목을 제정, 시달한 뒤 각 고을의 수령을 현지확인하여 논죄하겠다는 것이다. 제11조는 미진한 것은 추후 결정하겠다는 것 등이다.
이 절목은 벼농사의 변천과 수리사업의 발전을 밝히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비변사등록≫과 실록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