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60.7㎝, 입지름 41.4㎝. 용뉴(龍鈕)는 앞 오른쪽 다리의 전반이 결손되었고, 용통(甬筒)은 용두에 붙었는데 조식(彫飾)에 있어서 매우 퇴화된 형식이다. 상대와 하대는 똑같은 대상(帶狀) 무늬를 의장하였다.
상대와 하단에 연주문대(連珠文帶)가 둘려 있고, 내구(內區)에는 반사엽화형(半四葉花形)이 아래위에 서로 교차하여 배치되어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는 유운문(流雲文)이 채워져 있다. 반사엽화형 무늬는 외곽과 같은 계선(界線)으로 구획을 주어서 내구에는 연자(蓮子)를 표현한 자방부(子房部)를 이루었고 외구에는 당초무늬를 둘렀다.
유곽대(乳廓帶)에는 파상(波狀)의 당초문형식의 구름이 새겨졌던 바깥쪽 둘레에 연주문이 둘렸다. 4개소의 유곽 안에는 10엽 연화좌(蓮花座)에 얕게 부출된 유두(乳頭)가 각각 9개씩 배치되었다. 2개의 당좌(撞座)와 2구의 비천상은 종신 아래쪽 공간에 서로 교대로 배치되었다.
당좌는 가운데에 연좌가 들어 있는 자방을 중심으로 8엽의 연화가 들어 있고, 그 둘레에 S자형 당초문이 둘려 있으며, 다시 그 둘레에는 5개의 화형으로 외곽 주어진 연주문대가 둘려 있다.
이 종의 규모는 소형이나 전체적으로 신라종의 형태를 따르고 있고, 당좌와 교대로 배치된 비천상은 그 형식이 퇴화된 모습이다. 당좌와 천인상 사이에 양주(陽鑄)된 명문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이 종은 고려시대인 963년(광종 14)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