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1월까지 19호로 종간되었다. 우리나라 불교잡지 효시인 『원종(圓宗)』의 속간이다. 권상로(權相老)가 편집 겸 발행을 맡았고, 조선불교월보사에서 발행하였다.
전체의 목차는 광장대(廣長臺)·사자후(獅子吼)·무봉탑(無縫塔)·대원경(大圓鏡) 등으로 나누었다. ‘광장대’는 주로 시평(時評)을 수록하였는데, 2호에 실려 있는 권상로의 「의무교육필요」 등은 주목할 만한 글이다.
‘사자후’에서는 주로 불교계의 개혁에 관한 논의와 반성 등을 실었는데, 9호에 있는 「불교통일론대강(佛敎統一論大綱)」은 뛰어난 논설이다. ‘무봉탑’에는 주로 불교에 관련된 수필을 실었는데, 2호의 「불교와 학문」 등이 주목된다.
‘대원경’은 불교연구에 대한 논설인데, 특히 금석문을 중심으로 하여 화엄사 등 여러 사찰의 내력과 사상적 의의 등을 연재하고 있다. 3호에서 10호까지 8차례 연재된 금석문 중에는 각종 비문(碑文)·전각(篆刻) 등의 자료가 열거되고 있다.
19호에 실린 「맹성(猛省)할지어다. 만천하청년승려제군」에서는 불교인의 의식개혁, 과감한 현실참여 등을 주장하는 대승적 기풍이 엿보인다.
창간호의 말미에는 「조선사찰령」에 대한 해설과 사찰령시행규칙, 주지취직인가에 대한 절차안내, 취급방법의 일 등이 상세히 실려 있어서, 이 잡지를 통한 일본불교의 동화정책을 엿볼 수 있다. 19호로 폐간되었고 『해동불교(海東佛敎)』가 속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