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근대적인 은행으로서 1896년 6월 김종한(金宗漢)·안경수(安駉壽)·이완용(李完用)·이채연(李采淵)·이근배(李根培)·윤규섭(尹奎燮)·이승업(李承業) 등 전·현직 관료들이 발기하고 주식을 공모하여 설립한 민간은행이다.
자본금은 20만원이었으며, 1주에 50원씩 4,000주를 발행하였으나 주식공모가 순조롭지 못하였다. 창립준비 사무소는 서울광통교(廣通橋) 북편에 두었으나, 다음달인 7월에 정동에 있는 벽돌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정부의 허가를 얻어 영업을 시작한 것은 1897년 2월이었으며 초대행장에는 안경수가 취임하였고, 개업 초부터 국고출납업무를 담당하였다. 같은 해 5월 다시 광통교 북편에 있는 독립협회사무소와 같은 건물로 사무실을 옮겨 영업을 계속하였다.
같은 해 8월에는 탁지부로부터 광주(光州)·진주·평양·개성에 지점을 설치하는 데 필요한 허가를 얻었다. 그 뒤 계속 영업을 하였으나, 1899년 10월 영업이 부진하여 업무를 정리하였는데, 이 때 실무를 담당한 장부조사위원(帳簿調査委員)은 이채연과 김영준(金永駿)이었다.
1900년 한흥은행으로 명칭을 바꾸고 은행장 권재형(權在衡), 평의장 민영환(閔泳煥) 등의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 재출발을 하였으나, 1901년 1월 사실상 폐점하고 말았다. 그러나 근대적인 은행을 경영한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5년간 영업을 계속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