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판. 호부장, 저지(楮紙) 96면. 1947년 조선사에서 간행하였다. 가람 이병기(李秉岐)가 제자를 쓰고, 이승만(李承萬)이 장정하였다. 책머리에 ‘애음고시조(愛吟古時調)’라 하여 상촌(象村)의 “노래 생긴 사람…”을 실었을 뿐 저자의 자서나 발문은 없다.
창작시조 107수 76편을 ‘파초(芭蕉)’, ‘설청(雪晴)’, ‘만월대(滿月臺)’, ‘정운애애(停雲靄靄)’, ‘일음(日吟)’, ‘옥중저조(獄中低調)’ 등 6부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조운의 창작시조는 1925년 『조선문단』과 『동아일보』를 통해 발표되기 시작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것은 주로 1930∼40년대 『신생』·『신가정』·『가톨릭청년』·『중앙』·『문학』·『월간매신』·『조광』·『문장』·『매일신보』에 실었던 시조들이다. 이 시조집의 지배적인 분위기는 심경(心境)이다.
그것은 고조(古調)의 창외적 재구, 외유(외喩)와 반복적 율조, 조어(措語)의 대립적 위상에 의한 독특한 형태의 운용과 결합되어 유기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사설시조 「구룡폭포(九龍瀑布)」를 들 수 있는데, 윤곤강(尹崑崗)은 이를 가리켜 “어떠한 작품을 갖다 대어도 조씨의 「구룡폭포」 한 편과 어깨를 겨눌 작품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 시조집에서 한 수의 시조를 석줄〔三章〕로 적은 것은 「선죽교(善竹橋)」, 「석담신음(石潭新吟)」, 「가을비」 등 10편뿐이고, 대부분의 시조는 마치 자유시의 시행처럼 한 장(章)을 2∼3행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윤곤강은 “나는 조운을 현대 조선 시조 작가 속에서 가장 이채(異彩)를 가진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또한 “시조문학의 개척자로서 가장 빛나는 존재”, “시조라는 낡은 시가 형태를 내용과 형식에 있어 현대화에 노력한 점”이라고도 하였다. 이 견해는 그 동안 많은 동의를 얻어 왔다. 그러나 다양한 행 나누기가 시조의 현대화일 수는 없다. 오히려 시조의 기본을 깨뜨리고, 율조의 붕괴를 초래하였다.